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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에 이름 붙이기 도서의 책소개, 저자소개, 글귀

자연에 이름 붙이기

 

자연에 이름 붙이기 도서의 책소개를 할 텐데 이 말은 분류학자가 테니스 시합에 나가거나 음악회에서 연주를 하고 있다면 괜찮은 이야기일 것이다. 그러나 마이어와 애버던은 과학자임을 자처하고 있었으니, 바로 이런 모호한 직관, 말로 표현하기가 불가능한 무의식적인 질서의 감각, 린나이우스에게는 너무나 훌륭한 수단이 되어주었던 이 모든 것은 점점 더 그들을 민망하게 만들고, 점점 더 과학적으로 엄격해지는 생물학자들의 집단에 들어가고 싶어 하는 분류학자들의 시도에 계속해서 큰 짐이 되고 있었다. 분류학은 나선을 그리며 추락하는 중이었고 그 무엇도 그 추락을 멈출 수 없어 보였다.

 자연에 이름 붙이기 도서의 책소개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에서 룰루 밀러가 이 책과의 만남을 '세계관을 뒤흔든 사건'이라 언급하며 "이보다 나의 생각에 큰 영향을 미친 책은 없다."라고 추천한 <자연에 이름 붙이기>가 드디어 한국 독자를 만난다. 저자 캐럴 계숙 윤은 숲 속에서 다채로운 동식물과 함께 어린 시절을 보낸 끝에, 종과 종 사이 관계를 밝히고 생물에 질서를 부여하는 '분류학'의 세계로  뛰어들게 되었다. 그러나 생물의 이름을 익히며 즐거워하던 아이가 어른이 되어 만난 분류학은 충격에 가까웠다. 생명을 정확한 질서에 맞춰 분류하는 과학의 방법은 "명백한 진실로 보이는 것"과 매번 충돌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언제나 과학이 옳다는 신뢰로 연구에 매진해 온 저자가 결국 경악하게 된 것은 "어류라는 분류군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 앞에서였다. "과학자들은 대체 어떻게 물고기라는 현실을 부인할 수 있는 걸까?" 물고기에 이어 얼룩말도, 나방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 사실은 저자가 유년기의 숲 속에서부터 생명에 대해 길러온 감각과는 너무도 어긋났고, 인간이라면 누구나 괴상하게 느낄 수밖에 없는 문제였다. 분류학이 발전할수록 아이러니하게도 생물이 사라져 가고, 인간과 자연이 단절되는 듯 보였다. 자연의 혼돈에 체계를 부여하려는 시도는 정녕 헛된 것인가, 하는 회의감에 빠진 저자가 빛을 발견한 것은 '움벨트(umwelt)'라는 개념에서였다. 이는 '주변 세계'라는 뜻의 단어지만 생물학에서는 "한 동물 종이 지닌 특수한 감각 및 인지 능력에 의해 키워지고, 그 종에게 결핍된 부분에 의해 제한된 결과 그 종이 특유하게 지니게 된 시각", 즉 "지각된 세계"를 의미한다. 우리 인간이라는 종이 공통으로 가진 움벨트가 철저히 감각적이며 극도로 주관적이라는 것을 깨달은 저자는 알게 된다. 움벨트는 그동안 과학의 가장 힘겨운 적수였으며, 200년에 걸친 분류학의 역사는 바로 과학이 인간의 움벨트와 싸워온 역사라는 것을. 그렇게 저자는 이 긴 이야기를 서문에서 단숨에 풀어놓고는, 마침내 "나는 내 물고기들을 되찾고 싶다."라는 선언과 함께 "물고기가 존재하지 않는 이 이상한 지점으로 우리를 데려다 놓은 여정의 이야기"를 시작하기로 한다. "다시 집으로 돌아갈 지도"도 잊지 않고 마련해 놓았다는 말과 함께. 이 책의 마지막 장을 덮을 때 당신은 알게 될 것이다. 그동안 보이지 않던 경이로운 세계가 어느새 눈앞에 펼쳐져 있다는 것을.

 저자 캐럴 계숙 윤 소개

예일대학교에서 생물학을 공부한 후 코넬대학교에서 생태학 및 진화생물학 박사 학위를 취득한 한국계 미국인 과학자이자 과학 전문 저널리스트다. 매사추세츠에서 태어나고 자랐으며 어린 시절 대부분을 집 뒤 숲에서 돌아다니거나 만화책을 읽으며 보냈고 현재는 워싱턴주 벨링엄에 거주하고 있다. 1992년부터 《뉴욕 타임스》의 〈사이언스 타임스〉에 생물학에 대한 글을 기고해 왔으며, 그의 기사는 《사이언스》, 《워싱턴 포스트》, 《로스앤젤레스 타임스》에도 실린 바 있다. 진화생물학과 분류학 사이의 갈등의 역사를 탐구한 대표작 『자연에 이름 붙이기』는 2009년 《로스앤젤레스 타임스》 도서상 과학·기술 부문 최종 후보에 올랐다. 최근작 : <자연에 이름 붙이기> … 총 11종 얼핏 따분해 보이는 주제를 다루면서도, 과학적 지식과 개인적 경험을 재치 있고 산뜻하게 엮어내, 이렇게 재미있을 줄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독자들이 책에서 눈을 떼지 못하게 한다. 이런 걸 보면 윤은 아주 특출한 과학 저술가다. 재미와 통찰이 가득하다. 캐럴 계숙 윤은 각자 자신의 ‘움벨트’를 되찾아 보라고, 생명의 세계에 한 걸음 더 가까이 다가가 보라고, 그리고 생명의 분류에 나타나는 경이로운 다양성들을 있는 그대로 타당한 것으로 받아들여 보라고 권유한다. 낙관적이면서 신명 나고 혁명적인 책이다

 글

숲속을 누비며 다니던 많은 아이가 그렇듯 나도 생물학자가 됐다. 나는 어른이 되었고, 그러면서 어릴 때 잡았던 여러 종류의 올챙이나, 쫓아다녔던 여러 종류의 메뚜기, 해마다 봄이면 늪에 나타났지만 한 번도 제대로 들여다보지는 못했던 헤엄치는 괴상한 덩어리들에 관해 품고 있었을지도 모를 몽매한 생각들은 치워버렸다. 그렇게 나는 진짜 과학적인 생명의 질서 짓기에 착수할 준비를 갖추었다. 한껏 경탄할 준비도. 물고기가 존재하지 않는 기이한 사정. 자연사에는 이름들이 넘쳐났고 범주들은 해체되었으며 혼돈은 계속 축적됐다. 그리하여 생명의 세계가 점점 더 많은 사람에게 그 어느 때보다 더 크고 긴급한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던 바로 그때, 공교롭게도 자연의 질서는 인간이 도저히 닿을 수 없는 곳으로 멀어지고 있는 것만 같았다. 오늘날에는 생명에 질서와 이름을 부여하느라 겪는 고통이 소수 전문 학자들만의 몫이지만, 린나이우스의 시절에 점점 커져가던 이 문제는 모든 사람이 공유하며 함께 속을 태우던 딜레마였다. 다윈이 『종의 기원』을 출간한 지 100년이 지나 있었다. 그는 과학과 철학, 종교, 정치의 토대를 뒤흔들었고, 지구에서 인류가 차지하는 위치에 대한 인류의 관점도 바꿔놓았다. 하지만 어째선지 꽉 찬 한 세기가 지난 후까지도 그의 작업은 분류학의 작동방식에 어떤 의미 있는 영향도 미치지 못했다. 분류학이야말로 그의 발견이 근본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갖는 분야인데도 말이다. 생물학에 폭발적인 돌파구를 만들어내고 하루가 다르게 우주에 대한 인류의 비전을 바꿔가며 대대적인 환영을 받은 실험 과학의 혁명조차도 생명의 질서와 이름을 짓는 일을 바꿔놓는 데는 실패했다. 도대체 그 이유가 뭘까? 나는 인류학의 세계에 뛰어들어 보고서야 이 강력하고 보편적인 생명의 비전이 또렷하게 그려진 모습을 목격할 수 있었다. 하지만 움벨트가 지닌 진짜 중요성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기이한 심리학의 세계로 풍덩 뛰어들어야만 할 터였다. 그 세계에서 자신의 움벨트를 완전히 도둑맞은 희한한 사람들에 관해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어떤 비극적인 진실도 보게 된다. 이 사람들이, 다른 어떤 사람이라도 그렇겠지만, 움벨트를 잃어버림으로써 정말로 길을 잃었다는 사실을. 분류학은 분류와 명명의 영역에서 인간의 움벨트를 점점 옆으로 밀어내는 첫걸음을 내디딜 터였다. 이 분야는 엄격하고도 객관적이며 진정으로 현대적인 과학이 될 것이다. 하지만 거기에는 의도하지 않은 결과들도 따를 터였다. 이제 곧 과학자들은 인간 감각의 구속에서 벗어나기 시작하고, 움벨트의 보편성을 하나하나 차례로 뒤로 남기고 떠날 참이었다. 그들은 마침내 태고부터 이어온 질서의 추구를 버리고 자신들만의 새롭고 이상한 여정에 나서기 시작하고, 그러면서 전혀 의식하지 못하고 있는 우리까지 그 여정으로 함께 이끌고 갈 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