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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끝의 버섯 도서의 책소개, 저자소개, 비평

세계 끝의 버섯

세계 끝의 버섯 도서의 책을 소개할 텐데 이 책을 소개하고자 하는 모든 시도는 반드시 실패할 것이다. 소개라는 것은 필연적으로 무언가를 정돈하여 한 방향으로 가지런히 놓는 속성을 가지는데, 나아가고 좁아지는 완결성이야말로 이 책이 대항하고자 하는 핵심 개념이기 때문이다. 실패가 예정된 이 소개글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쓰는 이유는, 진보적 낙관과 안정성의 공동(空洞)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탐색하는 것 또한 이 책의 목표이자 태도이기 때문이다.

 세계 끝의 버섯 도서의 책소개

우리 시대의 가장 이상한 상품사슬의 하나를 따라 자본주의의 예상치 못한 구석을 탐험한다. 한편에 일본의 미식가, 자본주의적 기업가, 다른 한편에서 라오스, 캄보디아의 정글 투사와 백인 참전 용사, 중국 윈난성 소수민족의 염소 목동, 핀란드의 자연 가이드 등 송이버섯을 채집하는 사람들을 만난다. 그 사이의 밴쿠버에서는 시간제로 호출되어 송이버섯을 분류하는 동남아시아 이민 노동자가 있다. 그리고 캐스케이드 산맥 숲 여기저기에서 활기 넘치는 독특한 경매 현장과 도쿄의 경매 시장으로 이어지는 송이버섯 무역의 다양한 세계를 목격하게 된다. 송이버섯을 둘러싼 이 동료들이 우리를 곰팡이 생태와 숲의 역사로 안내할 것이다. 어쩌면 인간이 대량으로 파괴한 시대에 공존과 동거의 가능성을 이해할 수도 있을 것이다. 소나무 숲과 산림 산업, 송이버섯 채집인의 역사와 현재를 추적하는 과정에서는 송이버섯, 풍경, 전쟁, 자유, 자본주의 사이에 기묘하게 얽힌 이야기가 소설처럼 펼쳐진다. 저자는 채집, 임업을 비롯해 균류학과 DNA 연구, 존 케이지의 음악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주제를 넘나 든다. “애나 칭은 우리를 압도하는 긴박하고 심각한 상황에서 이 상황을 사유할 수 있는 진정한 방법을 제공한다. “우리가 ‘자본주의의 폐허’에서 살아남아야 한다면, 경제, 문화, 생물학, 생존 전략 사이에 전혀 예상하지 못한 연결이 어떻게 가능한지에 대한 사례가 필요하다. 애나 칭은 세계화된 버섯이라는 믿기 힘든 놀라운 사례를 제공한다.” “이 책은 사람과 풍경, 풍경과 버섯, 버섯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사려 깊은 통찰력으로 미묘한 뉘앙스를 담아 탐구하고 있다. 북미와 중국의 숲에서 일본의 경매 시장에 이르기까지 현대 글로벌 상품사슬을 따라 펼쳐내는 저자의 깊이와 감수성에 인류학자, 역사가, 생태학자, 버섯 애호가 모두가 감사하게 여길 것이다.” 학술적이면서도 잘 짜인 소설의 유려한 산문으로 쓰인 책을 보게 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세계 끝의 버섯』은 눈부시게 훌륭한 작업으로, 우리의 중대한 관심사에 대해 발언하면서도 놀라운 발상, 읽는 즐거움을 선사한다. 이 책은 송이버섯을 렌즈로 사용해 현대의 환경 역사, 글로벌 상품 생산 및 과학을 살펴본다. 활공하는 듯하는 산문, 날카로운 지성, 한결같은 창의성과 독창성을 통해 이질적인 주제를 새롭고 심오한 방식으로 연결한다. 놀랄 만큼 많은 분야에 걸쳐 있는 이 작업은 고전이 될 운명이다.

 저자 애나 로웬하웁트 칭 소개

인류학자. 캘리포니아대학교 산타크루스캠퍼스 교수. 글로벌 자본주의를 주로 인간 사회의 정치경제적 행위로 분석하던 학계에 환경, 생태, 풍경, 다종민족지와 같은 생태인류학적이고 포스트휴머니즘적인 관점으로 이론적 지평을 넓혀 전 세계적으로 알려진 학자다. 『다이아몬드 여왕의 세계에서』로 1994년에 해리 벤다 상을, 『마찰: 글로벌 연결에 관한 민족지』로 2005년에 미국민족지학회가 수여하는 시니어북 상을 수상했다. 2007년부터 ‘마쓰다케 월드 리서치 그룹’을 조직해 송이버섯의 다종적 결합 및 송이버섯을 둘러싼 상품사슬을 여러 나라의 학자들과 공동으로 연구하고 있다. 2013년부터 5년간 덴마크국립연구재단에서 후원하는 오르후스대학교 닐스 보어 교수직을 수여받았고, 동 대학의 세계적인 인류세연구센터 소장으로 인문과학, 사회과학, 자연과학, 예술을 포괄하는 초학제적 연구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최근작 : <세계 끝의 버섯>21세기 최전선의 사상가 애나 칭의 대표작 『세계 끝의 버섯』 국내 처음 소개되는 인류학의 기념비적인 작품. “우리가 자본주의의 폐허에서 살아남아야 한다면, 이 책이 필요하다” 생태적이고 경제적인 붕괴 속에서도 살아가야 하는 우리에게 죽지 않는 존재, 그러나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는 ‘버섯’이 안내하는 불안정한 생존과 이상한 신세계. 나는 경제와 생태 중 어느 한쪽이 다른 한쪽에 종속된다고 보는 방식을 거부하지만, 경제와 환경을 잇는 한 가지 중요한 연결 고리를 먼저 소개하는 것이 좋겠다. 바로 인간과 비인간 모두를 투자 자원으로 삼아 부를 축적한 인간의 역사다. 이 역사를 통해 고무된 투자가들은 사람과 사물 모두를 소외시켰는데, 여기서 소외란 마치 생명의 얽힘 관계는 중요하지 않다는 듯이 독립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사람과 사물은 소외되는 과정을 거치며 이동하는 자산이 되었다. 

 비평

히로시마가 원자폭탄으로 파괴됐을 때, 폭탄 맞은 풍경 속에서 처음 등장한 생물이 송이버섯이었다고 한다. 원자폭탄을 손에 넣은 것은 자연을 지배하고자 하는 인간의 꿈이 절정에 달했을 때였다. 그리고 이때부터 그 꿈은 무위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히로시마에 떨어진 폭탄으로 상황은 달라졌다. 갑자기 우리는 인간이 의도했든 아니든 지구의 거주 적합성을 파괴할 수 있음을 깨닫게 됐다. 오염, 대멸종, 기후변화에 대해 알아갈수록 이러한 인식은 더욱 커졌다. 현재의 불안정성 중 그 절반은 지구의 숙명에 관한 것이다. 과연 우리는 어떤 종류의 인간에 의한 교란을 안고 살아갈 수 있을까? 지속가능성이 이야기되고는 있지만, 우리가 다종의 후손들에게 거주할 만한 환경을 물려줄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  20세기 기준으로 ‘일자리라 여겨졌던 것들의 수는 줄어들었다. 게다가 직업이 있든 없든, 우리 모두 환경파괴로 죽게 될 것만 같았다. 우리는 경제적이고 생태적인 붕괴 속에서도 살아가야 한다는 문제에 봉착했다. 진보에 관한 이야기도, 붕괴에 관한 이야기도 어떻게 하면 협력적 생존을 생각할 수 있을지 말해주지 않는다. 이쯤에서 버섯 채집에 주의를 기울여보자. 버섯 채집이 우리를 구원해주진 않겠지만, 우리에게 상상의 문을 열어줄지 모른다. 국가의 유효성과 자연 풍경에 대한 자본주의의 대대적인 파괴를 고려할 때, 우리는 국가와 자본주의의 기획 바깥에 있던 것들이 오늘날 왜 살아남았는지 질문할 수 있다. 이 질문에 답하려면 다루기 힘든 가장자리의 것들을 관찰할 필요가 있다. 미엔인과 송이버섯이 오리건주에서 함께 모이게 된 까닭은 무엇일까? 언뜻 사소해 보이는 이런 질문이 모든 것의 방향을 뒤집어, 예측 불가능한 마주침을 핵심적인 것으로 보도록 이끌지도 모른다. 송이버섯 덕택에 숙주 나무는 비옥한 부엽토가 없는 척박한 땅에서도 살아갈 수 있다. 그 대가로 곰팡이는 나무에게서 영양분을 공급받는다. 이 변형적인 상리공생 때문에 인간의 송이버섯 재배는 불가능했다. 일본의 연구기관들이 송이버섯을 재배하기 위해 수백만 엔을 들여 노력해 왔지만 아직 성공하지 못했다. 송이버섯은 플랜테이션 농장의 환경 조건에 저항한다. 인간은 불확정성으로 버섯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 풍요로운 유산을 물려받았다. 미국인 작곡가 존 케이지가 작곡한 짧은 퍼포먼스 곡들로 이루어진 〈불확정성〉이라는 시리즈에는 버섯과의 마주침을 기리는 내용이 많이 담겨 있다. 케이지는 야생 버섯을 찾기 위해서는 특정한 종류의 관심이 필요하다고 보았다. 그것은 마주칠 때 발생하는 모든 가능성과 놀라움을 포함해 마주침이 일어나는 지금 여기에 관심을 두는 것이다. 오가와 박사에 따르면, 한국인은 일본 중부로 오기 오래전에 사찰 건설과 철기를 생산하는 대장간의 연료로 쓰려고 숲을 베었다. 그들은 한국에서 송이버섯이 자라는, 인간에 의해 교란된 탁 트인 소나무 숲을 가꿨는데, 이는 그러한 숲이 일본에 생기기 훨씬 전의 일이었다. 8세기에 한국인들이 일본으로 건너왔고 숲을 베었다. 소나무 숲은 그런 산림 벌채 이후에 갑자기 생겨났고, 그와 함께 송이버섯도 나타났다. 한국인들은 송이버섯 냄새를 맡았고 그러면서 고국을 생각했다. 그것이 첫 번째 노스탤지어이고 송이버섯을 향한 첫사랑이다. 일본의 새로운 귀족들이 오늘날 유명한 가을 향기를 처음 찬양한 것은 한국을 향한 갈망에서였다고 오가와 박사는 이야기했다. 해외로 이민을 간 일본인이 송이버섯에 집착하는 것도 놀랄 일이 아니라고 그는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