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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스트 듀엣 도서의 책소개, 저자소개, 글귀

고스트 듀엣

고스트 듀엣 도서의 책소개를 할 텐데 《고스트 듀엣》은 세대와 계급, 성별과 성적 지향을 아우르는 연애담 모음집이기도 하다. 중년 레즈비언 커플, 가난한 청년 게이 커플 등이 보다 자유로운 세상을 원하는 집회 현장에서, 정담과 진담이 오가는 술집과 밥집에서, 소설 창작 수업에서 인연을 만나 뜨겁게 사랑하고 차갑게 헤어진다. 〈견본 세대〉에서 9년째 연애 중인 승남과 영수는 임대주택 견본을 보기 위해 한겨울에 오르막길을 올라간다. 

 고스트 듀엣 도서의 책소개

“소수자 옹호라는 시적 사명을 올곧이 수행하며 자신만의 시 세계를 밀어붙였다”(신동엽문학상) “풍부한 인간의 삶과 감정과 이야기가 있고 사회적인 자의식이 독특한 방식으로 표명돼 있다”(김준성문학상)고 평가받은 김현 시인의 첫 소설집을 선보인다. 김현은 한국 사회를 살아가는 퀴어의 서정을 섬세하고 애틋한 시선으로 그려왔으며, 인권 활동가의 면모도 돋보이는 작가다. 세월호에서 돌아오지 못한 304인을 기억하는 ‘304 낭독회’에 꾸준히 참여해 왔고 10·29 이태원 참사 추모문학제에서 사회를 맡았다. 한 달에 한 번 카페에서 다른 시인과 함께 ‘듀엣 낭독회’를 진행하기도 한다. 시 안팎으로 종횡무진 이루어지는 활동의 연장선에서 《고스트 듀엣》은 초자연적 현상(귀신과 유령)과 SF적 소재(홀로그램과 가상현실)를 매개로 산 사람·죽은 사람의 만남과 과거·현재의 단단한 연결을 도모하며, 사회적 재난 이후 살아남은 사람들의 삶과 퀴어 청년(청소년)의 아슬아슬한 연애담을 다룬다. 등장인물 각자의 구구절절한 사연이 모여 듀엣이 되고 합창이 되어 진정한 애도와 변화의 물결을 일으키는 작품 11편을 5년간 알차게 모았다. 어느 순간 정신을 차려보니 세상이라는 열차는 혐오와 차별,  폭력의 시대에 정차해 있었다. 나는 자주 의아하고 슬펐다. 퀴어여서, 여성이라는 이유로, 집단에서의 위계가 낮기에 혐오할 수 있고 차별과 폭력도 가능하다고 합리화하는 이 황량한 역에 왜 우리가 버려졌는지 알 수 없어서. 김현은 이번엔 시나 산문이 아니라 소설을 통해 혐오와 차별, 폭력이 난무한 시대와 이 시대의 적자適者들을 메마르도록 사실적으로 점묘하는 동시에, 우리가 저마다 감당하고 있는 ‘무너지기 직전의 인생’을 위로한다. 우리는 퀴어이거나 여성이지만, 때로는 위계가 낮고 가난하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우리에게는 아직 사랑이 남아 있다는 메시지를 김현의 소설은 가냘프지만 강인한 목소리로 전한다. 그 사랑은 크다. 크지 않을 수 없다. 사랑이 있어서 우리는 살아 있으니까. 인간일 수 있으니까. 김현이 펼쳐 보이는 큰 사랑의 서사로 당신을 초대하고 싶다. 

 저자 김현 소개

2009년 《작가세계》를 통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 『글로리홀』 『입술을 열면』 『김현 시선』 『호시절』 『다 먹을 때쯤 영원의 머리가 든 매운탕이 나온다』 『낮의 해변에서 혼자』, 산문집 『걱정 말고 다녀와』 『아무튼, 스웨터』 『질문 있습니다』 『당신의 슬픔을 훔칠게요』 『어른이라는 뜻밖의 일』 『당신의 자리는 비워둘게요』(공저) 『다정하기 싫어서 다정하게』, 소설집 『고스트 듀엣』이 있다. 제22회 김준성문학상, 제36회 신동엽문학상을 수상했다. 수상 : 2018년 신동엽문학상, 2015년 김준성문학상(21세기 문학상, 이수문학상)  최근작 : <장송행진곡>, <고스트 듀엣>, <바리는 로봇이다> 증오와 폭력이 판치는 세상이지만 맛깔스러운 술상과 밥상은 차려지고, 정다운 사람들이 식탁 주위로 모여들어 담소를 나눈다. 음식 앞에 자리를 잡는 것은 살아 있는 이들만이 아니다. 《고스트 듀엣》에는 산 사람만큼이나 죽은 사람이 여럿 등장한다. 엄마(〈수월水月〉), 남편과 자식(〈세상에 사연 없는 사람도 있나〉), 애인과 친구(〈고스트 듀엣〉〈견본 세대〉〈수영〉), 국가폭력 희생자(〈가상 투어〉), 노동자(〈그때는 알겠지〉), 수학여행을 떠난 학생들(〈천사는 좋은 날씨와 함께 온다〉)까지 한국 사회에 사연 없는 사람은 없고 죽음의 원인은 제각각이나 그들의 “죽음을 데리고 다니는 이들”이 모여 공동체를 꾸리며 하루하루를 살아낸다. 《고스트 듀엣》은 “서서히 빛을 잃어가는 존재를 그저 지켜볼 수밖에 없다고 해도 당신 역시 쉬지 눈 감지 말”(85쪽)라고 속삭이며, 주옥같은 작은 기쁨에 꿋꿋이 매달리고 의지해보자고 손을 내미는 소설집이다. 2009년에 등단해 작품 활동을 시작한 지 어느덧 14년이 된 작가가 그간 시 세계를 통해 보여준 삶의 태도와 지향점을 소설에서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발췌문

우리 엄마가 오래 산 건 아빠를 먼저 보내서야. 농을 칠 줄 알고. 부모 둘을 일찍이 떠나보낸 복희도 그럼 나는 너랑 오래오래 살겠다 맞장구치며 웃을 줄 알았다. 새벽부터 여자들이 웃으면 복되나니. 국 없는 밥상머리에서 이런 주문을 쓱 읊을 줄도 알고. 득권 씨는 사연을 들을 줄 아는 숙자 씨의 귀를 보았다. 복이 나가다가도 들어올 귀네. 그는 그녀를 보며 사실, 하고 말을 이으려다 멈췄다. 사연이란 역시 사실이구나 사실, 속으로 사실을 여러 번 되뇌다가 숙자 씨와 자신이 사실상 연애 중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왜 하필 그런 문장이었을까. 다른 것도 아니고 어째서 무너지고 무너졌다는 말을 우리는 붙들고 있었을까. 주미는 왜 그렇게 빨리 인생은 이룩되는 것이 아니라 무너지는 것이라고 깨쳤을까. 상민은 곁에 없는 주미가 그리웠다. 석찬을 한순간 철들게 한 것이 한 사람의 죽음이 아니라 한 사람과의 삶이었다면 어땠을까. “다들 우리 같은 사람들 이상하다고 하잖아요. 죽은 사람을 평생 끼고 살아서 어쩔 거냐고. 오죽하면 저희 남편도 떠났게요. 그만할 때도 되지 않았냐고, 당신만 견디는 거 아니라고, 언제까지 그럴 거냐고. 근데 모르죠, 저도. 언제까지 이럴지. 그걸 제일 알고 싶은 게 우리잖아요, 우리가 제일 궁금하잖아요. 안 그래요?” 눈빛. 그것은 죽음을 데리고 다니는 이들을 하나의 공동체로 만드는 언어였다. 눈빛은 아무런 말을 하지 않으면서도 많은 말을 했고, 꼭 해야 할 말을 꼭 하도록 했다. 그들이 살아 있던 사람들이라는 것을. 유미야, 너의 적은 내가 아니라 입만 열면 여자는, 말하는 김 선생이고, 장난이랍시고 쇠 자로 허벅지나 종아리를 건드리는 홍 선생이야. 나는 그런 놈들이랑은 근본적으로 다른 사람이라고. 형석은 사과할 자격을 잃어버리지 않는 사람이야말로 자신을 만만히 여기지 않는 사람이라고 생각했고, 승우는 사과하지 못했음을 평생 기억하는 사람이야말로 누군가를 만만하게 여기지 않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나와 영수는, 아마도, 아니 분명히 이후로도 오랫동안 꿈이 있는 사람으로서, 가난한 연인들로서 각자의 삶과 우리라는 삶을 동시에 살아내고자 애쓰게 될 것이다. 나는 그런 우리에게 주고 싶었다. 그게 무엇이든 줄 수만 있다면, 주어야 한다면. 주는 행위만으로도 사랑은 생생한 색채를 띠기도 하니까. 말하고도 싶었다. 나의 가장 큰 소원이 아니라 나의 가장 작은 소원을. 그 소원은 여러 갠데, 비가 와도 곰팡이가 피지 않는 집, 수도꼭지를 틀고 한동안 녹물을 빼지 않아도 되는 집, 화장실 벽 너머에서 들려오는 울음소리를 듣지 않아도 되는 집, 겨울마다 창문에 단열 시트를 붙이지 않아도 되는 집, 바퀴벌레를 잡으려고 여기저기에 약을 놓지 않아도 되는 집, 라꾸라꾸 침대에서 조심스레 사랑을 나누지 않아도 되는 집, 우리 둘이 같이 사는 삶이라고.  그래야 살아남을 수 있었다. 계획을 세우고, 계획한 대로 실행하고, 계획을 수정하고, 보완하면서 계획에 가깝게 계획을 마무리하면서. 그날 이후로 수영은 수영의 삶이 아니라 ‘혼자’ 살아남은 수영의 삶을 살았다.